요즘 대장금의 아성을 위협하며 화제의 중심에 선 한국 드라마 <폭군의 셰프>. 초반에는 “조선시대로 회귀한 이야기가 과연 흥미로울까?” 하는 의문을 안고 보았지만, 어느새 8화까지 따라오며 작품의 매력에 푹 빠졌다. 특히 8화에서는 사신단과의 요리 대결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라유’라는 양념이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역사적으로는 고춧가루가 조선 후기 이후 전래된 것이 유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드라마 속 고추장과 라유 설정은 다소 허구적 장치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라유라는 소스의 문화적 배경과 매력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 드라마 속 라유와 역사적 맥락
<폭군의 셰프> 8화는 사신단과의 요리 대결이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연지영은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내며 새로운 풍미를 선보이고, 아비수는 이를 바탕으로 ‘라유’를 탄생시킨다. 실제 역사적으로는 고추가 조선에 들어온 시점이 17세기 초 이후라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연산군 시대 배경의 드라마 속 ‘고추장과 라유’ 설정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극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드라마의 묘미다. 역사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양념을 차용함으로써 요리 장면은 시청자에게 새로운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라유가 등장하며 요리 대결에 깊이와 풍미가 더해지고, 극 중 인물들의 심리전 역시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절묘하게 활용한 연출 덕분에 ‘라유’라는 양념은 단순한 소스가 아닌 이야기의 상징적 장치가 되었다.
2. 라유의 기원과 세계 속 확산
라유(辣油, rāyu)는 단순히 고추기름이라기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품은 양념이다. 일본식 라유는 매운 기름과 마늘, 고추를 주재료로 하여 딤섬이나 면 요리에 곁들여 사용되며, 중국식 라유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다.
- 쓰촨식 라유: 화자오와 두반장을 활용해 얼얼하고 매운 맛이 특징. 훠궈, 마라탕, 탄탄멘 등에 자주 쓰인다.
- 호남식 라유: 마늘과 생강 풍미가 강하며 직선적이고 강렬한 매운맛.
- 충칭식 라유: 붉은 기름층이 두껍고 고추가 대량으로 들어간다.
- 광동식 라유: 건새우나 말린 가리비가 첨가되어 감칠맛이 강조된다.
- 윈난식 라유: 토종 고추와 향신료로 독특한 풍미를 낸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는 ‘라오간마(老干妈)’다. 크리스피 칠리 오일과 두시 풍미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라유계의 코카콜라’로 불릴 정도다. 최근에는 미국의 Fly By Jing 같은 스타트업이나 하이디라오 같은 글로벌 체인도 라유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즉, 드라마 속 라유는 단순한 소스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요리 문화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시청자가 라유에 흥미를 느끼는 순간,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음식 문화 전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3. 개인적 감상: 왜 라유가 특별한가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처음 라유가 등장했을 때, 단순히 매운 소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맛본 라유는 예상보다 훨씬 복합적이었다. 기름에 튀겨진 마늘 조각과 고추기름 특유의 깊은 향, 그리고 적절한 매운맛과 감칠맛의 조화는 김치나 고추장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소면에 청경채를 곁들여 라유로 비벼 먹었을 때의 풍미는 한국 음식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라탕이나 짜사이에서 맛본 매운 기름과 유사하면서도, 라유는 더 기름지고 감칠맛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자극적인 매운맛을 넘어 ‘균형 있는 맛의 싸움’ 같은 인상을 준다.
요즘 가장 애정하는 제품은 쓰촨유라자(四川油辣子)로, 얼얼하면서도 풍부한 향신료 풍미가 인상적이다. 결국 드라마에서 라유는 단순한 양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청자에게는 색다른 음식 경험을 소개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음식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라유가 일상 식탁에 빠질 수 없는 양념이 되었고, 드라마 덕분에 그 매력을 재발견하게 된 셈이다. <폭군의 셰프>가 단순한 요리 드라마를 넘어 음식 문화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