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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 은비적각락(隱秘的角落, The Bad Kids) ㅣ 욕망으로 얼룩진 군상들의 향연

by 미쿠44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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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 은비적각락(隱秘的角落, The Bad Kids)
중국 드라마 은비적각락(隱秘的角落, The Bad Kids)

 

 

 

중국 드라마 은비적각락(隱秘的角落, The Bad Kids)은 2020년 아이치이(iQIYI)에서 방영된 범죄·스릴러·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으로, 쯔진천(紫金陳)의 소설 《나쁜 아이들(坏小孩)》을 원작으로 한다. 세 아이가 우연히 살인을 목격하면서 사건에 휘말리고, 인간 내면의 어둠과 욕망이 차례로 드러나는 과정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본 글에서는 작품의 줄거리와 인물, 연출적 특징,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을 나누며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작품 개요와 줄거리의 핵심

은비적각락은 중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다. 주차오양, 옌량, 푸푸라는 세 명의 아이들이 우연히 산에서 살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게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범인은 평범한 수학교사로 보이는 장둥성이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한 모습을 유지하지만, 내면에는 열등감과 왜곡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범죄와 어른들의 세계가 교차한다는 점이다. 세 아이가 처한 상황은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각자의 가정사, 결핍, 그리고 생존을 위한 선택들이 얽히면서, 시청자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된다. 극은 종종 아이들의 순수함과 그들이 마주한 현실의 잔혹함을 대조시키며, 관객을 지속적인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또한 “같이 산에 갈래?”라는 장둥성의 대사는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평범함 속에 감춰진 섬뜩한 악의 본질을 압축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이 대사는 이후 인물들 사이의 심리적 긴장과 위협을 환기시키는 트리거로 반복적으로 기능하며, 시리즈 전반에 걸쳐 불길한 여운을 남긴다. 이런 점에서 은비적각락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예리하게 해부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 연출과 배우들의 시너지

이 작품은 신상 감독의 첫 번째 드라마 연출작으로, 다큐멘터리와 영화 편집 분야에서 쌓은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다큐멘터리 특유의 날카롭고 사실적인 시선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렸으며, 편집 기법 역시 감정의 리듬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카메라의 시선 처리, 장면 간 시간의 엇나감, 사운드의 미세한 사용까지 모두 현실을 침투하는 불안감 생성에 기여한다. 배우진의 캐스팅 또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장둥성을 연기한 친하오(秦昊)는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점차 광기로 물드는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억제된 말투는 인물의 내면에 숨은 왜곡된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주차오양, 옌량, 푸푸 역의 아역 배우들은 외형적 귀여움만으로 끝나지 않고, 복잡한 감정과 도덕적 갈등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내어 성인 배우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또한 은비적각락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신상 감독의 배우 활용 방식이다. 만장적계절에서도 함께했던 배우들이 재등장하면서 일종의 페르소나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오히려 배우에 대한 감독의 세심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기적 색깔을 끌어내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긍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캐스팅 철학은 배우들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고 캐릭터의 다층성을 강화한다.

3. 개인적 감상과 여운

필자는 은비적각락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었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은 시청자를 혼란에 빠뜨리며, 아이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예상치 못한 파장을 낳는 전개는 긴장감을 끊임없이 유지시킨다. 특히 카메라 앵글과 편집이 만들어내는 서늘함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주요 원동력이었다. 주차오양과 옌량, 푸푸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만약 그날 그들이 만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이 질문은 단순한 서사의 상상이 아니라, 인간 삶이 얼마나 우연과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가를 보여주는 철학적 질문으로 다가온다.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선택들의 누적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며, 관객은 자신이 만약 그 장면 속 인물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자문하게 된다.

 

<만장적계절>과 비교했을 때 은비적각락은 더 밀도 높은 몰입감을 제공하지만, 결말이 주는 감정은 훨씬 무겁고 불편하다. 만장적계절이 희망의 여지를 남기며 회복의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반면, 은비적각락은 어두운 현실의 잔혹함을 지운 채로 끝난다. 특히 번외편까지 본 뒤의 허탈감은 더욱 커져, 마치 동화적 환상이 비극으로 귀결되는 영화 속 장면처럼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 결말을 떠올리게 하는 그 허무함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자 단점일 수 있다. 결국 은비적각락은 단순히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직시하게 만드는 심리극이다. ‘누구에게나 숨겨진 어둠이 있다’는 메시지는 작품이 끝난 뒤에도 계속 마음속에서 반향을 일으킨다. 개인적으로는 연출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호연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관객에게 후련함을 주지 않는 결말은 감정적으로 무거운 여운을 남겨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든다.

 

중국 드라마 은비적각락(나쁜 아이들)은 범죄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연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어른들의 세계는 불편하지만 매혹적이다. 끝내 후련함을 주지 않는 결말은 오히려 이 드라마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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